단순한 입병? 실명까지 부르는 베체트병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김도영 교수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0년 국내 희귀질환 진료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베체트병으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1만 9358명에 달한다. 베체트는 터키의 피부과 의사로, 질환을 발견한 그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사람의 몸에는 외부의 세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면역체계가 있다. 하지만, 과로나 스트레스 등으로 신체 리듬이 망가지면 감염이나 외상에 대한 정상적인 면역반응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김도영 교수는 면역반응 이상으로 몸속 면역세포가 적절한 보호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염증을 일으켜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데 이를 자가면역 또는 자가염증질환이라며 자가면역 반응과 자가염증 반응이 베체트병 발생에 관여한다고 설명한다.
베체트병은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혈관이 지나는 곳이라면 입, 피부, 생식기, 눈 등 전신에 나타날 수 있다. 발생 부위에 따라 증상과 합병증도 다양하다. 그래서 베체트병은 다양한 증상을 확인하며 진단한다. 입병(구강궤양), 성기궤양, 피부병변, 포도막염 등 종합적인 근거를 통해 진단한다. 염증 활성도나 합병증 유무를 파악하기 위해 혈액검사를 할 수 있다.
베체트병의 발생 위치가 다양한 만큼 증상과 합병증도 다양하다. 베체트병 환자 중 90%가 겪는 최초 증상은 입병, 즉 구강궤양이다. 피곤할 때 한두 군데 헐기도 하지만 환자에 따라 1년 내내 입이 헐어있는 경우도 있다. 피부에 발생하면 결절 홍반, 구진농포성 발진, 여드름양 발진, 혈전성 정맥염 등이 발생해 혈액순환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생식기에는 외음부 염증 등으로 생식기능 장애가 생길 수 있고, 관절, 혈관, 중추신경 등에도 침범해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특히, 대장을 포함한 장관에 염증과 궤양이 생겨 설사와 혈변으로 고통받거나 심한 경우 장천공에 의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염증에 의해 약해진 혈관 쪽으로 혈액이 몰려 부풀어 오르는 동맥류가 생기거나, 혈전으로 큰 정맥이 막히는 심부정맥 혈전증도 위험한 합병증 중 하나다. 심한 안구 포도막염에 걸리면 실명에 이를 수도 있다.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김도영 교수는 대부분의 면역성 질환이 그렇듯 베체트병 또한 원인과 치료법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난치성 질환이라고 말한다.
베체트병은 미국, 캐나다, 유럽 등에서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지만, 그에 비해 한국, 일본, 중국,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과거 실크로드 인접 지역에 주로 분포해 있다. 베체트병을 ‘실크로드병’으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홋카이도대학교 오노 교수가 실크로드를 따라 해당 지역 주민들의 유전자를 분석해본 결과, 6번 염색체에서 HLA-B51이라는 유전자가 공통적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환자의 약 40~50%는 HLA-B51 유전자형을 가진다. 그러나 건강한 일반인의 약 10%에서도 발견되는 유전자형이기에, HLA-B51 유전자형이 확인되더라도 베체트병으로 진단할 수는 없다.
베체트병의 특징 중 하나는 재발성 질환이라는 것이다. 증세가 나빠졌다 좋아졌다를 반복해 완치는 어렵지만 증세를 조절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래서 지속적인 면역 관리가 필요하다. 피로하거나 과로하면 증세가 심해지기 때문에 평소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을 통해 면역력을 높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또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 비타민 등을 먹으면 예방에 도움이 된다.
베체트병의 주요 증상이 건강한 사람에서도 피곤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입이 허는 증상으로 대부분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증세가 나아지지 않거나 성기에 궤양이 생기고, 눈 충혈 또는 날파리증이 생기고, 피부 등에 염증이 생기면 서둘러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베체트병의 단일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기에 염증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여러 약물을 동시에 투여하며 장기간에 걸쳐 치료한다.

